안데스의 음악처럼 삶의 터전을 빼앗긴 아픔이 나타나고,

스페인의 플라멩코처럼 억압받는 삶의 설움이 음악으로 승화된다. 또한 이 땅의 모든 Music은 그 시대의 이야기들이다.

그 현실 속이 아픔이라면 아픔을 표현하고 희망을 전해주는 음악이 주를 이루는 것은 당연힌 일이다.

그러다 보니 다분히 정치적인 성향을 띠는 건 당연한 거다.

 

특히 식민지배나 독재를 겪었던 많은 나라에서 저항의 메시지의 음악으로 많은 데,

동시대의 아픔을 호흡했던 음악가들이 들려주는 현실 참여의 메시지인 것이다. 또한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생생한 생명력을 음악에서 느낄 수 있게 된다. 그 어느 곳보다도 어두운 현대사를 겪어 온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시대의 아픔과 동시에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은 많은 음악들이 민중들에게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중남미의 현대사를 음악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이름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Sosa)나 칠레의 빅토르 하라(VictorJara)와 같은 인물들이 그 대표적인 음악가들이다. 또한 이들처럼 깨어 있는 음악가들의 노력은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정체성을 일깨우며 누에바 칸시온(NuevaCancion)이라는 이름의 노래운동으로 이어져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에 확산되었고, 단순한 음악적 흐름 이상의 의미와 가치로 기록되고 있다

 

 

사진출처,마젠타님블로그, 기타연주하는 비올레타 파라

 

60년대에서 70년대의 라틴 아메리카는 정치적인 혼란과 더불어 외국 거대 자본의 막강한 힘에 휘둘렸었다. 빈부의 격차뿐만 아니라 미국을 등에 업은 군부 독재정권의 횡포로 인해 민중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갖지 못한 채 고초를 겪어왔다. ‘새로운 노래라는 뜻을 지닌 누에바 칸시온(NuevaCancion)은 이미 50년대부터 피델 카스트로’(FidelCastro)체 게바라’(CheGuevara)가 이룬 쿠바 혁명은 누에바 칸시온의 정신적인 힘이 된다. 근거지가 생긴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안데스 음악이 바탕이 되었다. 그 음악적인 초석을 마련한 인물로 아르헨티나의 아타왈파 유팡키(AtahualpaYupanqui)와 칠레의 비올레타 파라(VioletaParra)가 손꼽힌다. 이 노래들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누에바 칸시온 세대의 가수들에 의해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게 널리 퍼진다.

 

안데스 인디오의 혈통을 이어받고, 안데스 지역 민속음악을 발굴하는데 평생을 바친 아타왈파 유팡키는 가수이자 시인, 클래식 기타리스트였다. 그는 인디오의 전통을 직접 경험하며 자랐다. 안데스의 전통음악에서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확인했다. 그의 이름 아타왈파는 잉카제국 왕의 이름이며, ‘멀리서 와서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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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왈파 유팡키는 아르헨티나 음악의 대모’, ‘누에바 칸시온의 진정한 거장으로 불리는 메르세데스 소사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7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노래했던 많은 가수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독재정권에 시달렸던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음악가들을 비롯해 저항과 진실의 메시지를 담아 노래했던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았다.

 

메르 세데스 소사, 사진및 글일부,출처,지식백과-월드뮤직

 

칠레 민속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비올레타 파라(VioletaParra)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목소리로 전 세계에 감동을 전했던 명곡 ‘Gracias a laVida(생에 감사해)’의 원곡 가수이다. 메르세데스 소사와 함께 누에바 칸시온을 대표하는 칠레의 저항가수인 빅토르 하라에게 음악적 자양분을 공급한 인물이며, 자녀들인 이사벨 파라(IsabelParra)와 앙헬 파라(AngelParra)는 빅토르 하라의 음악 동료이자 칠레의 누에바 칸시온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Gracias a laVida(생에 감사해), 메르세데스 소사

 

 

 

 

뉴에이지(Newage)라는 음악 장르가 유행의 붐을 일으킨 이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조지 윈스턴(Geoge Winston)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도 그의 음악이 여러 배경으로 울려 퍼지기도 한다.
Geoge Winston의 대표작들은 Windam Hill 레이블에서 발매되었고, 당시 연주 음악이나 Newage로 불리는 음악들을 발매했던 레이블이었다. 조지 윈스턴의 인기와 함께 국내에서도 이 레이블의 인기가 음악팬들에게 는 꽤 많았었다.
돌이켜보면 연령이나 취향을 넘어서 국내에서도 가장 넓은 폭의 팬 층을 가지게 있던 레이블로 기억된다.


Windam Hill에는 너무나도 출중한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대표적 아티스트가 바로 마이클 헤지스(Michael Hedges)이다. Michael Hedges1953년 미국 오클라호마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이다. 1997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고속도로에서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자동차 사고를 당해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많은 팬들을 슬프게 했다. 그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떠나기 전까지 Hedges는 수 많은 앨범들을 발표했다.  

 

 

 


그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음악도 음악이지만 도대체 이런 기타 소리를 어떻게 내는 것인지가 너무 궁금했다. 왜냐하면 Guitar라는 악기는 손가락이나 피크로 줄을 튕겨서 소리를 내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Guitar소리는 신세계였다. 지금은 Fingerstyle 이라는 모습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보급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머리를 인디언처럼 땋아 길게 늘어뜨린 히피 같은 자유로운 모습과 옷만으로도 나의 마음을 흔들어 대기엔 충분하다. 기타를 들고 손바닥으로 타악기처럼 Guitar를 다루며 Humming을 하는 그의 연주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을 후벼 파는 신비의 마술이었다.

특히 '편안함을 주는 음악'이라는 Newage 장르의 효용성과 마이클 헤지스가 연주하는 사운드와의 관계는 별로 연관이 없어 보는 듯 자유롭게 두드려대고, 팅기고 하모닉스 또한 자유롭다. 콘서트 도중에 즉석에서 만들었다는 Magic Famrmer라는 곡은 가히 신비롭기까지 하다.

 

드의 음악은 독특한 개성과 강한 실험성까지 내뿜고 있다.  '백그라운드 뮤직'이나 '명상음악', '집중력 향상을 위한 음악' 등의 기능성 음악으로서의 Newage와는 거리가 멀다. 장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력이 갇혀있던 수많은 Newage Sound와는 달리 거침없는 곡 구성과 연주들로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또한 테크니컬한 특유의 Acoustic Guitar Sound는 다른 어느 Musician의 작품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Michael Hedges의 음악을 감상해 보자.

 

 

Michael Hedges - Aerial Boundaries

양방언!

1960년에 태어났다.

그는 분단의 상징이다.

Pianist이다.

Newage Musician이다.

 

부모의 태생이 남북한이기도 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엄청난 정체성 혼란을 느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 도쿄에서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협재리 출신의 아버지와 평안북도 신의주시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조선적을 가진 재일조선이어서, 자신도 출생부터 조선적을 가지고 있었다. 1999년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

사실 내가 양방언이라는 Pianist를 알게 된 것은 6년전쯤 어떤 청소년이 통기타 하나로 양방언의 ‘Frontier’라는 곡을 편곡하여 올린 You Tube 영상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이때 Frontier’라는 곡에는 피아노 뿐만아니라, 장구, 일렉기타, 드럼, 바이올린까지 함께하는 것을 통기타 하나로 원곡 못지 않게 소화해 내는 것을 봤을 때의 놀라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양방언이라는 Pianist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 것이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학생시절의 밴드 활동에서 시작하여 일본 의과대학에 진학하기 전부터 키보드 연주자, 작곡가, 사운드 프로듀서로서 1980년에서 1995년까지 많은 레코딩, 라이브에 참가했다. 1985년에서 1986년까지 1년간 일본내의 대학병원에 근무했지만 음악의 길을 가기 위하여 사직했다.그 후 음악 활동을 재개했는데, , 재즈, 클래식, 국악, 월드 뮤직, 게임 뮤직 등을 포함한 다채로운 음악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진출처, 조인정블로그

 

양방언은 12개의 악기를 다룬다. 그중 누구한테 배운 것은 피아노뿐이다. 나머지 하프 등의 악기는 전부 독학으로, 몸으로 익힌 셈이다.

1996년 일본에서 첫 솔로 앨범인 'The Gate of Dreams'를 발매하였다. 이후 솔로로 7장의 앨범을 출시했으며, Into The Light이후 런던 교향악단,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의 유명 관현악단들이 매번 참여하고 있다. 일본 NHK의 대작 애니메이션 '십이국기'(十二國記)의 음악을 작곡·연주했고, OST5장의 CD로 일본에서 발매하게 된다.

 

또 홍콩 스타TV의 드라마 '정무문과 성룡의 영화 '썬더볼트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국에서는 MBC 개국 40주년 기념드라마 '상도의 테마 음악과 KBS Documentary ’차마고도의 음악을 작곡하였다. 앨범에 수록된 Frontier!2002년 아시안 게임의 공식 주제가로 채택되었다. 특히 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Prince of jeju‘를 나는 가장 좋아한다.

 

나는 양방언 팬 카페의 회원이기도 하다. 물론 적극적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회원은 회원이다. 양방언의 연주를 많이 듣는 편이다. 거의 모든 곡들이 동양적인, 우리나라의 전통악기들을 사용하고 접목시키려 애쓴다. ‘Dream of Railroad’ ‘ The Gate of Dream’ ‘바람의 약속’ ‘침묵의 빛등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킨다.

 

 

EBS스페이스 공감, 양방언편 중 'Prince of jeju

 

 

Sting! 영국의 Sing-Songwriter

말이 필요 없는 존재다.!
‘Synchronicity‘앨범을 마지막으로 그룹 해체와 함께 솔로 전향을 선언했다. 솔로 시절의 곡들은 뉴 웨이브를 벗어나 유로피언 재즈, 보사노바 등의 영향을 받았고, 담백하고 서정적인 분위기 덕분에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Sting의 광팬이다.

Sting은 자신의 음악적인 견해를 어느 Interview에서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논리적으로는 연관이 없는 것들을 정반합의 원리로 Mix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대단한 헤겔의 변증법이다.

Sting의 또 하나의 매력은 독특한 목소리 바로 Voice에 있다. 높고 어딘가 쉬어 버린 것 같은 음색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들으면 매우 어색한 독백처럼 보이지만 이 목소리가 애잔한 멜로디 위에 실려 온다. 거기에서 허스키한 묵직함과 가치관을 모조리 쏟아내는 칼칼한 호소는 왜 아직도 Sting에 열광하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이유가 된다.

 

 

 

 

Sting은 대중의 입맛에 맞는 음악만을 하지 않는 가수로 더 유명하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이끌어 나가며, 끝없이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예전 어느 TV방송에서 송창식씨가 아직도 메트로놈을 켜놓고 기타연습을 계속한다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그 모든 것들은 연습량에 비례하는 것 같다. 한 우물을 판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이러니 내가 인간적으로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Sting의 정치 성향은 상당히 진보적이다. 여러 정치 상황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가사의 많은 부분이 스스로의 세계관을 멜로디 위에 실어 보낸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스팅의 곡은 Police 시절의 ‘Every Breath You Take’‘Englishman in New York‘ 영화 레옹의 OST로 사용된 ‘Shape of My Heart’이다. 이 노래 외에도 나는 ‘Fragile’이란 곡을 좋아한다. 감미로운, 그렇지만 터져 버릴 것 같은 숨 막히는 절제가 폭발을 예고하는 듯하다.

아마 Sting은 하늘나라로 가서도 무대 위에서 쓰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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