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디언플룻과 칼림바를 연주하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의 숨결과 보드라운 손길로부터 음악은 시작됩니다.

나는 마음에 담긴 그림들을 꺼내고, 보여주려는 사람입니다.

그림 속에는 따뜻함과 애틋함이 담겨 있습니다.

이 순간,

나의 음악은 당신의 그림이며, 나의 그림은 당신의 음악입니다.

나의 마음은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떨려 나옵니다.

평화로움을 간절히 염원하는, 봄눈이 흩날리는 밤의 홀로 빛나는 별입니다.‘

(봄눈별의 Homepage중에서)

 

봄눈별

사진출처,프레시안

 

내가 경험한 아픔들 중에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것 같은 아픔과
당장 내일을 긍정할 수 없는 아픔과
오늘 하루만 견디자는 정도의 아픔 등
여러 갈래의 많은 아픔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아픔은
마음 한구석이 언제나 시큰거리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런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픔은 진심으로 웃는 것도
사람과 사랑과 우정을 믿는 것도
내가 이미 충분한 존재라는 것까지도
언제까지나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략)

내일은 나아질 거라는 생각 대신
오늘의 내가 감사하다는 생각과
지난날의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이면
내일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대신
내일을 살아갈 이유를 사랑하게 된다.
나아지지 않더라도 살아갈 용기가 난다.

 

나는 점점 검소해지고 있음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이 모두 많은 돈과 정신적 에너지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삶의 잔 근육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느리고 꾸준하게 하는 것이다.

(봄눈별의 글 중에서)

 

내가 봄눈별이란 뮤지션을 처음 만난 건 5년 전쯤으로 생각한다. 어느 치유음악회에서 본 봄눈별은 무슨 도사 같았으며, 인디언 플롯과 칼림바를 연주하는 그 모습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었고, 음악이었다. 그 뒤로 두세 번을 더 만나면서 간단히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는 아주 소탈한, 아주 솔직한, 그냥 음악할 때나 일상이거나 구분이 잘 되지 않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마음속에 상처딱지처럼 굳어버린 스스로의 아픔을 인정하고 진지하지만 처연하게 연주하는 봄눈별이다. 치유하기 위한 음악을 전하는 것과 함께 봄눈별 스스로가 치유하는 삶의 과정임을 절절하게 느낀다.

굳이 치유라는 단어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의 음악을 듣는 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치유음악,인디언플롯,진주에서

 

 

 

 

요즘 카펜터즈(Capenters)의 노래, '클로즈 투 유(Close to You)'가 정처 없이 떠오른다. 오랜 세월 사랑받고 있는 팝의 주옥같은 고전이다. 이 노래의 멜로디는 너무나 청아하다. 사실 '클로즈 투 유'는 카펜터즈의 노래가 아니라 턱 앤 패티(Tuck &Patti)의 음악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팝의 리메이크를 하나 꼽으라면 턱 앤 패티의 이 노래를 꼽고 싶다. 물론 제프 버클리(Jeff Buckly)할렐루야도 만만치 않지만 말이다.

또한 턱 안드레스의 유로파 솔로 곡은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산타나(Santana)의 유로파(Europa)가 무색할 정도의 편곡과 즉흥연주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유로파였다.

 

턱 앤 페티

사진출러,쿨님브로그

 

 

턱 앤 패티는 기타를 연주하는 턱 안드레스(Tuck Andress)과 노래를 하는 패티 캐치카트(Patti Cathcart)로 이루어진 듀오이다. 1988년 앨범 '티어스 오브 조이'로 데뷔하면서 이들의 음악은 당시 국내에서는 재즈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컨템포러리 재즈라는 장르로 이들의 음악을 이야기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의 음악을 규정할 수 있는 장르가 당시에는 딱히 없었기 때문에 재즈라는 카테고리(Category)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무엇인가 장르적으로 규정지을 수 없고 어쿠스틱 연주 기반의 음악이면 일단 재즈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 이들의 음악이 지금 시점에 나왔다면 팝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이들의 음악은 당시에 장르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무척 신선했으며, 충격이었다.

턱과 패티는 오디션 장에서 만나 서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였다. 거기에 나는 음악적 가치들도 함께 하지 않았나 싶다.


이들의 이런 음악적 성격과 매력이 잘 드러난 앨범이 1989년 발매한 '러브 워리어스(Love Warriors)'이다. 턱의 기타 반주와 패티의 노래, 단 두 가지의 소리로만 채워진 앨범이다. 앨범의 노래 제목들을 살펴보면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의 'Honey Pie'와 브라질 음악가 도리 케이미의 'Cantador'뿐만 아니라 지미 핸드릭스의 음악까지 그 장르 범위가 무척 광범위하다.

신디로퍼’ Time After Time’은 입이 다 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음반을 재생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스타일과 편곡으로 마지막 곡까지 너무나 편안하게 흘러가는 이들의 음악적 마력에 푹 빠지게 된다. 특히 저에게는 음악가의 개성과 독창성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게하고 본인 작곡만을 가장 최고라고 생각하던 철없던 시절이어서 턱 앤 패티는 나에게 있어 음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어떤 음악이라 하더라도 턱 앤 패티가 들려준다면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장르에 대한 관찰력과 애정으로 하여 마냥 푹 빠져 버릴 것만 같다. 점점 더 깊어가는 Tuck & Patti의 음악이 나에게는 영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Tuck & Patti 'Time After Time'

 

 

 

Tuck Andress 'Eroupa'

 

 

녹음을 한다는 것도 쉽지가 않다. 드럼을 치는 대석이야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지만 요즘은 게임도 하면서 밤낮이 많이 바뀌어버려 시간 조절하는데 애를 먹을 거다. 벌써부터 징징대는 거 보면 말이다. 베이스를 치는 경돈이는 만화를 그리기도 하지만 집이 멀고 그렇지만 경돈이는 꾸준하다. 건반을 맡고 있는 홍연이는 부모가 반대가 심하다. 그런데 이들 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기타로 얼마 전에 영입한 태봉이다. 겉멋은 잔뜩 들어 있는데 연습량이 아직 뒤따라 가지를 못한다. 이런 경우 완벽주의자인 Yuni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다. 난 그런 Yuni가 정말 우러러 보인다. 자기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한사람, 한 사람을 존경하는 그 마음은 천상 Reader이다. Reader는 두개주고 한개만 받을때도 있고, 심지어는 세개주고 한개도 받지 못할 때도 있다. 가가자의 위치에 스스로가 빛나기를 주문을 한다.

 

 

이번엔 두 곡을 녹음하는데 스틱스의 강가에서와 예전에 Yuni가 작사 작곡 해 놨던 곡을 녹음 할 것이다. ‘24Hours’란 곡이다. 어떻게 하다 이런 작사가 나왔는지는 나도 모른다. Yuni가 영화를 보고 만들었다는 둥, 책을 읽고 썼다는 둥 혹자는 엄마이야기를 썼다는 둥 설이 많다.

 

 

가사를 보면 도대체 20대 초중반의 아이가 쓸 수 있는 가사가 아닌데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게 너무 궁금하다. 밤에 만나 조금 더 합을 맞추어 나가며 녹음을 할 것이다.녹음하고 난 후엔 어떡할지는 생각도 안해봤다. 나도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피에르 벤수잔(Pierre Bensusan)이라는 기타리스트를 안 것은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듣는 데 어디에 묶여 헤어 나올 수 없는 아주 묘한 감정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렇게 처음 피에르 벤수잔을 만났다.

뉴에이지 기타리스트 중에 마이클 헤지스와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고, 마이클 헤지스와는 음악으로 만난 절친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음악이 있다. 장르로 보면 포크, 재즈, 클래식, 팝으로 다양하다. 팝만 해도 컨트리, 올드 팝, 뉴 에이지, , 사이키델릭, 메탈까지 복잡할 정도이고 이 단어들을 모르면 음악을 모른다고 놀림까지 받을 만큼 다양함의 숫자가 너무 방대해졌다. 또한 같은 계열이라 하더라도 아프리카, 중동, 극동, 인도, 남아메리카까지 정말 많은 지역적 특색을 지니는 것, 그 만큼 다양한 음악이 있다심지어는 세계 인구 70억 명인데 70억 개의 장르(?)가 존재한다는 말이 들려올 정도로 많다.

이렇게 다양하게 장르별 지역별 음악이 있음에도 가끔은 어느 장르나 지역에 넣어야 할지 고민되는 음악을 만나기도 한다. 바로 피에르 벤수잔이 그렇다. 우연히 그의 음악을 듣고 바로 매료되어 버렸다

 

 

사진출처,견공님블로그

 

피에르 벤수잔은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핑거스타일)기타리스트이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신세계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내면의 혼란을 느끼는 지경에 다다른다. 뉴에이지라는 항목으로 적용을 해보지만 사실 어느 장르에 넣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음악에 가까울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벤수잔이 어느 인터뷰 내용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내 놓는다

"나의 음악은 포크가 아니고 재즈도 아니고 팝도 아니다. 그리고 클래식 또한 아니다. 그것은 나의 것 그 자체다

기타를 연주할 때는 기타를 치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너는 그저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 눈을 감고 소리와 공간만을 생각하라“고 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기타리스트란 말처럼 원곡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즉흥적인 변주를 많이하는 피에르 벤수잔. 그의 음악이 소름 기칠 정도로 무서운 건 듣는 사람의 감정을 꿰뚫고 조종하는 듯이 자유롭게 휘몰아치는 전개를 보여준다.

 

마이클 헤지스라는 절친이 교통사고를 당해 저 하늘로 간 뒤 큰 시름 속에 시달리다 마이클을 추억하는 곡을 만들어 하늘나라로 보낸다. 그 곡이 ‘So long Michael’란 연주곡이다.

 

 

 

So long Michael

 

 

 

 

 Iz1959년에 호눌룰루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97년 저 무지개 너머로 떠나갔다. 이즈라엘 카마카미올레 (Israel Kamakawiwo'ole)라는 이름일 부르지 않고 Iz라고 부른다.

하와이의 전설적인 가수이자 독립운동가. 하와이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브라다 이즈(Bruddah Iz)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Iz는 고유명사화 되어있다. 340kg이 넘는 거구였지만 우쿨렐레를 잘 다루었다. 우쿨렐레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결국 과체중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1997년에 죽었다. 하와이의 독립을 위해 힘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이 사람의 노래를 영화 BGM에 많이 삽입했다.
1997년 그가 죽었을 때, 하와이 주에서는 조기(현충일에 게양하는 그 조기)를 게양했으며, 1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하와이 전통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추모할 정도였다. 이것은 하와이 주정부가 민간인을 위해 최초로 조기한 사례다. 버락 오바마 이전에 하와이를 대표하는 인물은 이즈라엘이었다.

나는 이 노래에 깊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래서인지 순수한 우울이 더 다가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주인공 마우이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하다.

하와이의 신화에 관한 노래를 영어로 만들어 미국 내에 발매하였으며, 하와이의 정신이 담긴 하와이안 장르를 알리는데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의 대표곡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Somewhere Over The Rainbow', 'What a Wonderful World'. 영상 마지막에 사람들이 바다에서 축제 같은 걸 벌이며 환호하는 영상이 나오는데, 이게 하와이 전통방식으로 진행한 그의 장례식이다. 바다에 뭔가를 뿌리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게 화장된 이즈의 유골...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1939년에 나온 영화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에서 주인공 도로시역을 맡은 주디 갈란드(Judy Garland)가 부른 노래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무지개 너머 어딘가)’라고도 불린다.

수많은 가수에 의해 리바이벌 된 발라드곡이지만, 이 곡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라질 뻔했다고 한다. 시사회를 마친 MGM 간부들이 이 노래가 영화 전체의 흐름을 늘어지게 한다며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감독의 고집으로 간신히 살아남았고, 이 곡은 아카데미 영화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가사에는 순수한 낙관주의와 바닥에 묘하게 깔린 우울함이 섞여 있다. 하와이 출신의 가수 이즈(Iz)가 우클렐레에 맞춰 불렀던 노래도 크게 화제가 됐었다.

 

over the rainbow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무지개 너머 어딘가, 저 높은 곳에
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
자장가에서 들었던 나라가 있다네.

 

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
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은 푸르고
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
네가 감히 꿈꿨던 일들이 정말 실현된다네.

 

Someday I'll wish upon a star
어느 날 나는 별에게 소원을 빌 거야.
And wake up where the clouds are far behind me.
그리고 구름이 내 뒤로 가버린 그곳에서 잠을 깰 거야.

 

Where troubles melt like lemon drops
걱정이 마치 레몬 사탕처럼 녹아 없어진 곳
Away above the chimney tops
굴뚝 꼭대기 위 저기
That's where you'll find me.
그곳에서 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거야.

 

Somewhere over the rainbow, blue birds fly,
무지개 너머 어딘가, 파랑새가 날고,
Birds fly over the rainbow,
새들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네
Why then, oh why can’t I?
그렇다면 왜, 왜 나라고 못할까?

 

 

 

 

 

 

러시아에서 키노는 비틀즈였고 키노의 리더 빅토르 최는 존 레논으로 비교되어진다. 그 만큼 빅토르 최와 '키노'의 인기는 폭발적인 것이었다. 그의 인기가 얼마나 굉장했는지는 상상도 몰할 정도다. 빅토르 최는 1962년 카자흐스탄공화국 크질오르다에서 고려인 2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술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내에서 팔라타 세스토이(6병동)라는 록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다가, 반국가적인 노래를 연주한다는 이유로 퇴학당한다. (당시는 아직 러시아가 소련이던 시절)

그 후 기술학교에 다시 입학한 빅토르 최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끝없이 불타오른다. 그 결과 1982키노(KINO)라는 역사적인 록 그룹을 탄생한다. 정말 역사적인 사건이다.

 

 키노밴드,맨왼쪽이 빅토르최, 사진출처,미래의 창

 

빅토르 최의 노래 중에는 유독 자유와 저항을 외치는 가사들이 많다. 그가 활동했던 1980년대 후반은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와 자유에 대한 민중들의 갈망이 가장 강렬했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빅토르 최의 저항 정신이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린다. 또한 빅토르는 징병거부자이기도 하다. 키노의 노랫말에는 반전과 자유, 저항의 메시지가 강렬하다.

 

이후 1990년에는 빅토르 최의 인기와 젊은이들의 저항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그 사건은 1990624, 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키노의 공연에서 열렸다무려 1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빅토르 최와 키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관중들은 빅토르 최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변화와 자유를 외치기 시작한다이들의 목소리는 곧 대규모 시위로 번진다. 소련을 붕괴를 초진한 사건이 된다.

 

이 사건으로 빅토르 최는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인 KGB가 감시하는 최고의 요주의 인물이 되고 계속 감시를 받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990815, 빅토르 최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 사망의 KGB가 관계되었다는 설이 엄청나게 퍼져나가고 소련의 붕괴가 시작된다. 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란 이름으로 말이다.

 

사진출처,중앙Photo

 

그의 나이, 불과 스물여덟 살이었다.

 

빅토르 최의 사망 소식은 소련의 젊은이들은 충격에 빠뜨렸다. 소련 전역에서 다섯 명의 여성이 빅토르를 그리워하다 자살했으며, 수많은 이들이 빅토르 최의 시신이 안치된 시립병원에 몰려든다. 병원은 곧 빅토르 최의 추모 인파와 팬들이 던진 장미꽃으로 뒤덮였고, 그의 죽음에 흥분한 팬들의 성화로 장례식이 며칠씩 연기되는 사태가 일어난다.

 

이후 소련 곳곳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카잔, 키예프, 알마아타, 타슈겐트 등에 빅토르 최 거리가 들어섰고, 모스크바의 문화예술의 장소인 아르바트 거리에도 '빅토르 최 추모의 벽'이 생겼다.

 

아르바트 거리의 추모의 벽. 사진출처,피카르트님블로그

 

지금도 아르바트 거리의 빅토르 최 추모의 벽에 가면, 그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와 생전에 그가 즐겨 피웠던 담배, 꽃들이 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구소련의 마지막이자, 러시아의 첫 영웅이다. 빅토르 최에 대한 영화가 현재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있다.

 

 

 

Kino의 대표곡 혈액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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